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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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백년전 중국인이 발견한 “일본문명”
2014년 04월 26일 09시 06분  조회:4405  추천:32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55)

백년전 중국인이 발견한 "일본문명"

김문학        

 

 아놀드.J.토인비, 사무얼. 헌팅턴, 버그비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문명사가들은 일본을 “하나의 나라로서 하나의 문명권을 이룬다”고 독특한 일본론을 전개해 왔다. 

 일본이 중국의 주변국임에도 불구하고 중국문명권에 귀속시킬수 없는 이질성, 독자성을 그들은 “일본문명권”으로 귀추시켰다. 1990년대 초반에 《문명의 충돌》에서 사무얼.헌팅턴은 세계를 8대 문명권으로 분류하고 일본을 중국형 유교문명권이 아닌 “일본문명권”으로 간주했다.

일본은 일본만으로 “하나의 유니크한 정신세계ㅡ문명권”을 구축했다는 주장의 계보에는 도인비, 슈펭글러, 버그비 그리고 일찍 100년전 일본에서 뼈를 묻은 라프케디오.헌[즉 고이즈미 야구모(小泉八雲)]도 있다.

  그는 일본 동경대 영어교수로 부임되면서 20세기초의 일본에 매료되며 일본 녀자와 결혼을 하기도 한 인물로서 “일본통”이였다. 그는 《일본》, 《마음》(1904년) 등 저작을 통해 일본인의 내면세계, 미(美), “일본문명의 진수”를 발견한다.

  같은 시기 서양인이 발견한 일본문명과는 달리 중국인은 류학을 통해 일본땅을 밟으면서 또다른 모습의 일본을 “발견”하게 된다.

  서양지식인이 중국문명의 이질성에서 독자적 일본을 “발견”한데 반해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국문명의 련관성에서 중국과 동질적인 일본을 “발견”하는것이 흥미롭다.

  로신은 이렇게 술회한다. “당시의 류학계에서 혁명사상을 품은 자가 상당히 있었다. 실제적으로 운동에 뛰여든 자외에 신문을 낸 자도 있었으며 옛서적을 필사하는 자도 있었다. 베낀것은 거의가 중국에서 자취를 감춘 금서로 내용은 대체로 명말청초의것으로서 청년들에게 맹성(猛省)을 독촉하는 계기가 되였다.”(《략담향항(略談香港)》)

  일본이란 이 동문(同文)의 린국에서 로신은 “회구(懷舊)의 념을 술회하고 옛것을 생각하는 정을 발하며 조상의 깊은 령(靈)을 빛내고 대한(大漢)의 천성(天聲)을 울리고자”하는 자유를 만끽한다.

  그의 동생 주작인은 아예 일본을 중국옛날이 살아있다고 한다. 《일본지재인식(日本之再認識)》에서 주작인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에서 받은 감각은 절반은 이역(異域)이고 절반은 고석(古昔)이며 그것도 이 고석은 우리 나라가 아닌 이역에 건재하고있는것이다.”

   주작인의 회억에 따르면 그는 동향의 선배들이 동경의 거리를 거닐 때면 늘 일본집이나 가게의 간판의 서체에서 “여전히 당나라의 유풍이 존재하는것”을 느꼈다고 한다.

  100년전 중국지식인들이 일본에서 발견한 일본문명은 중국 옛 “당나라의 유풍”이 의연히 남아있고 당나라의 중국옷이 “기모노”로 그대로 보존돼있는 습속전통이였다.

  그런데 더 중요한것은 일본의 가시적(可視的)인 중국풍습보존뿐만아니라 중국의 고전문헌, 자료, 사료들이 무진장하게 남아있다는것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서 지대한 충격을 받는다.

  일본에는 중국 청국에서는 이미 실종되였거나 자취를 감춘 금서, 기서, 희소본의 고전서적들이 잘 보존돼있었다. 견당사, 견수사 이래 중국에서 가져온 방대한 량의 고전서적을 완벽히 보존하고있었다.

  중국에서는 력대 왕조의 정책에 의해 금서, 분서 처분을 늘 진행해왔으며 이데올로기에 의해 서적은 늘 피해를 받았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수양제의 분서 또는 청조때 중국고전문헌을 집대성한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시에도 반청적 한족의 사상이 깃든 서적을 금서로 3천종 67만권이나 불살라버렸다. 그리고 전란과 자연재해로 서적의 소실, 분실, 파손이 엄중했다. 그리고 도둑이 들어 분실된 책도, 서양련합군에 의해 불살라버린 책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수입한 한서책을 소중히 보관했으며 따로 필사본을 남기기도 했다. 일본이 중국보다 전란이 적었던것 역시 하나의 리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일본인은 중국서적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소중히 보관하였으며 특히 한적한 절에다 보존했다. 보존의 천재인 그들은 필사를 할 때는 좋은 일본지를 골라서 베꼈으며 진흙과 대나무로 쌓은 쿠라(일종의 창고)에 보존했는데 불, 물, 습기에도 강한 쿠라는 좋은 보존고였다.

  1880~1890년대 일본에서 발견되는 중국고전서적을 찾아서 중국의 지식인들이 일본에 몰려들었다. 하여장을 따라 일본공사로 된 유명한 황준헌은 일본이 중국고전의 보물고라는 발견에 경악하며 적극 발굴, 구입하기도 한다.

  제2대 일본공사 려서창(黎庶昌)은 부하이며 지식인인 양수경(楊守敬)에 명하여 수년간 일본에 산재한 고전을 발굴, 수집하게 한다. 그는 《고일총서》란 제목으로 그 책서목을 집결했다. 그리고 4년여동안 당, 송시기의 귀중본, 문헌자료 3만권이상이나 구입했다. 그중에는 《주역》 6권, 《상서자전(尙書子傳)》 잔본 5권, 《고문상서(古文尙書)》 13권, 《례기(禮記)》 20권이 포함된다.

  유명한 지식인 동강(董康, 1867~1947)의 일본 방서(訪書)행적은 많은 업적을 쌓았다. 관료, 정치가, 법학가인 그는 량계초와 예전에 《시무보(時務報)》를 경영한적이 있으며 유신사상가이기도 하였는데 책을 목숨처럼 사랑한 인물이였다. 그는 1902년부터 1936년사이 무려 8차례나 일본에 가서 일본에 있는 중국서적을 수집, 구입하였는데 일본의 저명한 학자 나이토고난 등 많은 지식인과 교류하였으며 고서목록학을 위해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이밖에 당시 청국류학생들에게 청조가 발금한 서적들 《양주10일기(楊州十日記)》, 《가정도성기(嘉定屠城記)》, 왕선산(王船山)의 《황서(黃書)》, 황종희의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 등은 귀중한 반청혁명지침서로 되였다.

  근대 중국인의 고전서적 발굴, 수집에 대해 중국의 현대 사회학자들은 “문헌보급, 문물재현, 학술련의”에 지대한 의의가 있다고 언급한다.(趙欒)
  그리고 또 하나 특기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일본 근대 사상, 서적들이 중국어로 번역되면서 일본발 학지(學知)가 중국에 “신학(新學)”으로 수입되면서 중국 근대의 서양적문명개화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한것이다.

  이 일본문명에서 발신되는 학지를 수용한데서 형성되는 중국 근대문명에 대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도하지 않다. 단지 우리가 그에 대한 인식이 결여했을뿐이지 그 영향은 안일한 정서로 덮어감출수 없다. 고대 중국이 일본을 영향준것만큼 근대 중국, 조선은 같은 맥락에서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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